서사

정말 서로에게는 서로가 전부인 상우유경. 

조상우는 빚 때문에 다 때려칠 생각이었고 유경이는 반대로 돈이 너무 많아서 삶의 의욕이 없음. 이제 가질 거 다 가진 사람들은 할 게 없고 아득바득 노력할 게 없으니까 삶이 지루해진다구……. 그러던 와중 서로를 만나는 거지. 약간 누가 봐도 처량하고 당장이라도 전부 놓아버릴 것 같은 모습에 본인을 비춰본 유경이 지랑 비슷하니까 조상우에게 먼저 말 걸 듯. 둘 다 흡연자로다가… 담배 하나씩 빨면서 세상 살기 힘들죠? 이러고 말 걸어, 유경이가. 근데 조상우는 유경이가 말 거는 게 마냥 달갑지는 않을 듯. 그래도 이 사람이 본인에게 말 거는 마지막 사람이 되겠지, 싶어서 대꾸는 해 줌. 근데 유경이가 누가 봐도 돈 많은 사람이에요, 하는 그런 아우라 풍기니까 조상우 본인이랑 비교하더니 인상 잠깐 찌푸리고…. 그럼에도 혹시나 하는 마음에 확인 사살 당함. 돈 많죠? 하고 직설적으로 물어 볼 듯. 유경이는 잠깐 그런 말 한 상우 쳐다보더니 없진 않죠, 그쪽은? 이럼. 처음 본 사람한테 그런 얘기 하는 것도 웃긴데 경제적 상황은 달라도 서로 당장이라도 놔버릴 것 같은 분위기가 비슷하잖아. 거기에 끌려서 빚 있어요, 60 억. 하고 대답해 줌. 유경이는 돈은 더럽게 많은데 쓸 데가 없으니 별 생각 없이 뱉어. 대신 갚아 줄까요? 이러면 조상우는 얘가 나를 동정하나, 싶을 듯. 자존심은 있으니 됐습니다, 하고 말하려다 유경이가 말을 덧붙임. 대신, 같이 좀 살아요, 우리. 하고. 조상우 진짜 뭐 하는 여자인가 싶은데 은근히 끌리는 것임. 이 여자도 할 짓 없나 보네, 하고 설마 진짜 갚아 주겠어? 하는 마음으로 그렇게 합시다, 라고 해. 일단 말은 뱉었으니 진짜 같이 살긴 하는데 독촉 문자가 원래 시도 때도 없이 와야 정상인데 안 오는 거임. 그래서 조상우는 진짜 대신 갚아 준 겁니까, 하고 물어 봄. 솔직히 60 억이 뉘 집 개 이름도 아니고 처음 본 사람이 갚아 줄리가, 했는데 진짜 갚았댄다. 근데 또 하는 말이 그 정도 대신 갚아 줬다고 무너질 집안 아니예요, 우리 집. 그렇게 얼렁뚱땅 동거 시작하고 한두 달 정도 지났을까, 같이 술 마시면서 유경이가 턱 괴고 한 마디 툭 뱉음. 살짝 취기가 올라온 상태로 그냥 우리 아무도 없는 곳으로 떠날까요, 같이. 이럼. 다른 사람이 말하면 들은 척도 안 할 조상우가 유경이 말이라 그런 것도 있고 취기가 올라와서 그런 걸 수도 있고 절대 할 일 없을 줄 알았던 충동적인 말을 뱉음. 그럽시다, 떠납시다. 아무도 없는, 아무도 모르는 곳으로. 

집안 억압에 질릴대로 질리기도 했고 돈은 많아도 쓸 데가 없는 유경이랑 반대로 본인에게는 돈이 매우 필요한, 돈이 전부인 상우가 만나서 서로만을 의지하고 구원해 주며 서로의 연명을 돕고 종래에는 함께 도피하고 눈 맞는 그런 서사. 사람 별로 안 사는 시골에서 오순도순 살기.